[직업전환] 무용음성해설 심화과정

수기

[직업전환] 무용음성해설 심화과정

202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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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와 관객의 연결, 무용음성해설 공연 제작기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는 시각장애인 관객을 위한 무용음성해설가 인력양성을 위해 무용음성해설 심화교육을 진행했다. 교육은 <무용인 한마음축제 in 성남> 참가작 해설을 하는 것을 목표로 무용음성해설대본 작성과 발성연습으로 10주 동안 이뤄졌다. 심화교육에 참여한 해설가는 총 네 명으로 필자와 김길용(와이즈발레단), 이경구(고블린파티), 지우영(댄스시어터샤하르)로 구성되었다.

<무용인 한마음 축제 in 성남>은 갈라 공연의 형식으로 예술 단체의 기존 작품 중 10분~15분 정도 분량의 일부 장면을 발표하는 것으로 이들이 맡은 작품은 다음과 같다. 필자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피버>, 김길용 단장은 국립발레단의 <탈리스만> 파드되, 이경구 안무가는 LDP무용단의 <Mob>, 지우영 안무가는 부산시립무용단의 <운무>이다. 장르는 현대무용과 발레 그리고 한국무용으로 이뤄져 대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각 장르의 독특한 특징이 해설로 번역되기에 어려운 부분으로 다르게 나타나는 양상을 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장르의 어휘와 무용음성해설의 무한한 가능성을 경험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심화교육은 국내 무용음성해설가 인력양성을 위한 커리큘럼의 시도였으며 참여자들이 대본 작성부터 공연의 내레이션까지 직접 참여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교육이 공연으로까지 이어지는 ‘첫 사례’였다. 이는 국내에 무용음성해설교육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공연 프로덕션이 개발 단계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참여한 해설가와 교육자가 무용에 적합한 해설을 만들어나가는 데에 중점이 있었다.

 

 

교육과정

교육은 크게 대본 작성과 발성연습으로 이뤄졌다. 무용음성해설가로 참여한 해설가들은 각자 맡은 작품을 중심으로 해설 방향 설정과 작품 분석, 프리뷰(preview)와 터치투어(touch tour) 프로그램을 기획 구성하였다. 해설 방향을 설정하는 단계에서는 해설가가 각자 맡은 작품 영상을 보고 작품의 주제와 전개, 분위기 등을 파악하여 작품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향을 정한 후 엠마 제인 맥헨리(Emma Jane McHenry)의 해설 방향 의견을 받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스코틀랜드에서 무용음성해설가로 활동하는 엠마 제인 맥헨리는 이미 국내에 몇 차례 소개된 바 있다. 국내에서는 사례를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보니 해외 선구자로서 그의 사례와 의견을 듣는 것은 꽤나 큰 도움이 된다.

해설 방향이 정해지면 예술 단체와의 인터뷰와 논의를 통해 본격적인 작품 분석에 들어갔다. 장르와 작품, 안무가에 따라 작품을 분석하는 방식은 각기 달랐는데 필자는 안무가 인터뷰, 음악을 작곡한 음악감독 인터뷰, 작품 소개 글과 음악의 가사를 받아 작품의 전개와 모티프를 찾는 것을 기반으로 하였다. 본 공연에서 발표한 <피버>는 마지막 장면인 ‘실크타령’으로 흥부가의 비단타령을 리메이크했다는 점에서 장면의 줄거리와 인물의 감정,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가난한 흥부 부부가 박을 열어보니 온갖 비단이 쏟아져 나와 가난으로부터 벗어난 흥분과 비단을 걸쳐보며 흥이 오른 상황으로 보았을 때 강렬한 음악의 비트와 폭발할 것 같은 움직임과 유쾌한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동작은 반복되지만 대열을 바꿈으로써 다르게 전달되는 에너지와 흐름을 해설에서 다채롭게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도 중요했다.

대본 작업에서는 기본적으로 문장의 문법 확인, 움직임이 해설된 글을 통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상상이 상황과 유사하게 되기 위해 전체적인 상황부터 구체적인 상황 해설로 전개되어야 하는 흐름, 움직임의 인과관계, 타이밍 등을 맞추는 것이 주안점이었다. 이와 더불어 해설이 상황 전달을 넘어 감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작업의 초반부터 공연까지 유효했다. 대본의 마무리 단계에서는 리허설 영상을 보며 타이밍에 맞춰 직접 해설하며 녹음, 눈을 감고 녹음본을 들으며 상상, 상상이 되기 어렵거나 매끄럽지 않은 문장 수정, 이를 타이밍에 맞게 다시 해설, 재녹음하여 눈을 감고 청취하는 것을 반복하였다.

희한한 것은, 이러한 작업을 공연 당일 새벽까지 일단락하고 ‘과연 여기(글)에 춤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들어왔을 때는 다시금 해설에 대한 의문과 공연을 해보아야만 알 수 있는 미제로 남았다. 계속되던 이 질문은 현장에서 시각장애인 모니터링 요원들의 피드백을 통해 그 답을 엿볼 수 있었는데, ‘그들(시각장애인 관객)에게 이 글이 전달되었는가?’라는 질문과 동격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해설을 놓고 보았을 때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의 피드백이 다르다는 점에서 더 어려운 지점이었다. 예를 들어 비시각장애인이 해설을 들었을 때 ‘너무 설명적이다’, ‘쉬는 구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들어도 상상하기 어렵다’, ‘상황보다 미학적인 해설이 되어야 감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등이 공통적인 반응이었으며 필자 또한 동일한 생각과 어쩔 수 없는(음악과 움직임의 속도) 해설의 흐름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이 해설을 들었을 때에는 전혀 다른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는데, ‘문장과 문장 사이에 간격이 넓으면 답답하다’, ‘해설 문장 사이에 간단한 표현이 상상할 수 있는 촉매 작용을 했다’, ‘표현만 있는 문장은 상상하기 어렵다’ 등이었다. 더불어 시각장애인은 비시각장애인과 다르게 청각정보를 듣는 것이 익숙해 다 들을 수 있으니 더 구체적으로 해설해도 좋다는 의견이었다. 모니터링은 대본 작업 과정뿐만 아니라 공연에서도 이뤄졌다. 그들의 피드백을 통해서만 음성해설이 빛이 난다는 점에서 필자는 무용음성해설공연이 배리어 프리 공연을 넘어 명확한 관객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관객을 만나는 기쁨을 경험할 수 있었다.

프리뷰는 공연 시작 약 30분 전부터(공연 운영에 따라 다름) 해설가가 공연의 정보를 미리 해설하는 것으로 로비에서 송수신기를 수령한 관객이라면 이어폰을 통해 이를 들을 수 있었다. 공연에 대한 이해를 돕는 해설로 단체소개, 작품 소개, 무대 소개가 주를 이룬다. 공연 시작까지 시차를 두고 반복하여 각기 다른 시간에 도착한 관객도 프리뷰를 들을 수 있도록 한다.

터치투어는 공연 시작 약 60분 전에(공연 운영에 따라 다름) 무대 또는 무대 근처에 마련된 공간에서 공연정보를 촉감으로 경험해 보는 프로그램이다. 무용수들이 입고 나오는 의상과 오브제를 직접 만져봄으로 공연의 이해를 돕도록 한다. 무대에서 이뤄질 경우 무대의 규모를 가늠하기 위해 직접 걸어보거나 무용수들의 동작을 따라해 보거나 만져보는 등으로 이뤄진다. 이번 공연에서는 무대 근처에 마련된 공간에서 약 15명의 시각장애인 관객과 보호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무용음성해설과 더불어 프리뷰와 터치투어가 함께 프로그램으로 구성될 경우 시각장애인관객은 더 풍성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

발성 교육은 성우 전문가에게 네 차례 받는 것으로 이뤄졌다. 교육 첫날 녹음실에서 해설가들이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교육의 마지막 날에는 작업하고 있는 대본의 일부를 녹음해 들어봄으로써 발성 교육의 전후를 직접 살펴볼 수 있었다. 이 교육을 통해 무용음성해설이 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발성을 함으로써 그 서사가 달리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문장을 읽을 때 호흡, 강세, 쉼표, 속도, 톤을 어떻게 조절하는지에 따라 같은 문장도 수많은 의미로 전달되었다. 대본에서 더 나아가 이를 발성하여 본인의 글을 직접 모니터링하고 그에 따라 작성한 글이 수많은 성격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매우 유의미하였다. 발성 교육을 받으면서 가장 남는 말이 있었다.

 

시각장애인 관객에게 해설가는 무용수에요. 그러니 자신이 쓴 글을 그저 읽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대 위의 무용수라는 마인드로 호흡하면서 해설로 춤춰야 합니다.

공연 <무용인 한마음축제 in 성남>

공연 당일 새벽까지 대본을 수정했던 터라 2시간을 채 못 잔 상태로 극장에 도착했다. 무대를 보니 그동안 수많은 글을 쓰고 지우고 수정한 지면처럼 보였다. 지면 위의 글은 무대 위의 무용수인 것이다. 10주 동안 대본을 쓰고 발성을 연습하고 순서를 외웠음에도 불구하고 극장에서 신속히 적응해야 했던 환경은 FoH(Front of House) 옆에 설치된 통역 부스 안에서 바라본 작은 무대였으며 영상의 시점이 아닌 무대 큐(que)였다. 첫 리허설은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우고 해서인지 12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해설을 마치고 통역부스를 나와 보니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과거 무용수로 활동하던 때 리허설을 한 번 끝내고 나면 나는 땀의 정도였다. 함께 해설가로 참여한 이경구 안무가는 이를 “마치 무용 콩쿠르에 처음 나갔다 온 느낌”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연습실에서만 연습하던 무용수가 처음 경험하는 무대에서 최대 역량을 아무렇지 않게 소화해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통역 부스 밖에서 들리는 현장음과 헤드셋으로 들리는 음악 소리의 시간차, 부스의 창문 안에서 작게 보이는 무대, 연습 때는 보지 못했던 조명, 영상과는 다른 현장의 에너지 등이 모두 처음 만나는 요소들이었다. 그러나 갈라 공연에서 극장 리허설을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차례였으므로 한 번의 리허설에서 체감하고 발견한 사항들을 기억해 공연 때의 유의할 사항들로 정리해야 했다.

공연은 긴장한 탓인지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단, 해설 순서로 인해 김길용 단장과 통역부스 안에 나란히 앉아 작은 창문으로 유니버설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중 백조 파드되)’를 보고 있던 장면만 남아 있다. 창문 밖을 보며 무대에 섰던 사람들이 이제는 해설가로, 새로운 역할로 데뷔한 무용인으로, 무대와 가장 먼 객석 뒤에 있지만 무대와 가장 연결된 사람이 되어 관객과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맺으며

무용음성해설 심화과정은 짧은 시간 교육을 받고 공연을 준비하는 것과 동시에 참여자들이 직접 체험하며 본인만의 메서드를 개발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저술과 연구 활동을 비롯해 기획 제작자로도 활동하는 필자는 이번 과정을 시작으로 무용이 글로 번역되는 무한한 가능성을 비롯하여 공연 프로덕션으로도 시도해 볼 수 있는 자극을 받은 계기가 되었다. 공연에서 음성해설은 제작에 해당하는 것으로 작품의 제작 시기와 맞물려 진행되어야 하며 함께 수정, 보완을 거쳐 공연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점에서 제작과 공연의 모든 과정에서 창작자들을 비롯해 제작자들에게 인지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극장에서 또한 무대기술부의 큐와 지원, 하우스와 티켓 파트와의 소통과 지원이 원활히 이뤄지려면 해설이 들어가기 위해 프로덕션 지지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다 방향으로 무용음성해설공연을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국내에 아직 무용음성해설의 기준이 서 있지는 않다. 어쩌면 사례를 축적해가며 가장 잘 전달될 수 있는 방식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특히 무용은 대사가 없고 몸의 움직임에 따라 작품이 전개된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움직임을 번역하고 이것이 작품으로 감상될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이 기존의 영상, 연극 등과 다른 점일 것이다. 무용음성해설 작업을 하며 어렵게 느껴질 때마다 그 역사적인 시초가 가장 일상의 소소한 관계에서 시작되었음을 떠올렸다. 시각장애인 친구를 위해 비시각장애인 친구가 옆에서 귓속말로 해설을 하던 모습 말이다. 친구와 함께 공연을 즐겁게 관람하기 위해 속삭이던 설렘과 이야기들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 처음을 생각하며 앞으로 더 많은 예술 단체와 관객, 극장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양은혜

양은혜는 공연기획제작사 스튜디오그레이스와 출판사 코레오그레피의 대표이다. 예술과 도시건축, 인문학을 연결하는 저술, 연구, 교육, 공연을 기획하며 제작과정을 아카이브콘텐츠로 출판한다. 현대무용과 문학, 문화, 건축을 전공하여 현재 신체와 공간의 관계를 축으로 건축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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