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음성해설] : 이창훈 아나운서 수기

수기

[무용음성해설] : 이창훈 아나운서 수기

20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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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도 누릴 수 있게

기고 : 이창훈 전 KBS 장애인 앵커


“어떤 취미 생활을 하세요?

“야구 경기 보는 거 좋아하죠.”

“야구요?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야구를...?”

사람들이랑 이야기 하다 보면 으레 듣는 반응이다.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 경기는 벌어지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눈에 담아야 묘미인데, 전혀 앞을 볼 수 없는 장애 정도가 심한 시각장애인이 이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니 위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

“아 야구요. 라디오나 텔레비전, 요즘에는 포털에 들어가서 중계방송을 듣죠. 상황을 전달하는 캐스터, 상황을 설명하고 평가하는 해설가의 음성을 들으며 따라갑니다. 투수가 공을 던지면서 그 공이 방망이에 맞거나 포수 미트에 꽂히는 그 잠깐의 시간을 같이 긴장하며 캐스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죠. 그러다 들리는 목소리에 일희일비하며 더 몰입해요.”

이 정도 설명하면 대체로 고개를 끄덕인다.

2000년대 후반 우리는 피겨 여왕 김연아에 열광했다. 그녀의 동작 하나에 박수가 쏟아졌고 겨울 올림픽의 관심도 증폭되었다. 겨울 올림픽, 그것도 김연아 선수의 스케이팅을 들으러 텔레비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동안 야구를 비롯해 공을 다루는 경기의 중계방송에 익숙했던 내게 몸과 날(스케이트)로 펼치는 경기는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음악이 흐르고 연기가 시작되자, 캐스터는 작은 목소리로 동작을 전달했다. 그 사이 해설가는 동작 관련 상세한 설명과 평가를 얹어 이해에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현장에서의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눈을 통해 장면을 담지 못했지만 다른 감각을 활용해 멋진 현장을 같이 즐겼다.

지난해 9월, 무용 공연을 현장에서 직관할 기회를 얻었다. 음악, 연극, 뮤지컬, 일부 영화는 소리 정보로 관객과 같이 호흡하는데, 무용은 시각 정보가 대부분이기에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당시 초대된 공연은 시각장애인도 같이 감상하도록 현장 음성해설이 제공된다기에 큰 궁금증과 소박한 기대감을 품고 공연장에 갔다. 도착해 음성해설을 청취할 기기와 이어폰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공연이 시작되고 무대에서는 무용수들의 동작이, 이어폰을 착용한 귀에서는 이를 설명하는 해설가의 음성이 실시간으로 이어졌다. 팔과 다리, 몸 전체의 동작이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고 반복적인 움직임을 이어지다 완성된 동작을 들으며 함께한 이들과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나를 발견했다. 야구를 처음 봤을 때와 김연아의 연기를 감상했을 때와 유사한 경험이었다.

 

‘무용 공연도 매개만 있으면 충분히 즐기겠구나! 계속 이어져야 할 텐데 또 하겠지?’

현시대를 관통하는 중요 키워드로 융합과 연결을 빼놓을 수는 없다. 길게 말하지 않더라도 늘 손에 쥔 스마트폰은 일과 사람, 일상을 빠르게 연결한다. 그리고 각 산업 분야도 여러 형태의 융합을 시도한다. 하지만, 장애인과 장애를 둘러싼 사회는 단절과 정체된 상황이 여전하다. 장애 비장애를 연결할 매개로 ‘베리어프리’가 각광받는다. 원래 이 용어는 건축 분야에서 논의되어 오다 여러 분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를테면 물리적 공간의 장벽이 되는 턱 등을 제거하는 건축 분야에서 드라마 등 영상 콘텐츠에 음성해설과 자막을 넣고, 여행과 관광 분야에도 무장애 관광이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무용 음성해설도 장벽을 깨고 보이지 않는 사람도 즐겨야 한다는 필요와 공감의 확산이 중요하겠다. 그러나 이 정도의 방향만 가지고는 몇 번 의미 있는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시각장애인을 포함해 무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 또는 음성해설이 무용을 즐길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할 전략이 필요하다.

베리어프리를 제작하는 한 단체는 유명 배우를 음성해설 내레이션에 투입하고 감독에게 베리어프리 연출을 맡겨 대중의 이목을 끌게 하고 작품을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제작에 참여한 한 감독은 인터뷰에서 “베리어프리영화는 소위 감독판처럼 장르적 특성을 갖는다."라고 말했다. 영화 종사자들은 기꺼이 이 단체의 홍보대사를 맡는 데 주저함이 없다.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 경기가 중계되지 않았다면, 김연아 선수의 연기가 방영되지 않았다면 야구장에서 경기를 여는 시구를 해 볼 기회조차 없었고, 김연아 선수 관련 대화에 어떠한 말도 얹지 못했을 것이다. 혹시 아는가? 음성해설을 통해 무용을 접한 누군가는 춤을 매개로 또 다른 꿈을 꿀 지.

이창훈 아나운서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아나운서, 장애인식개선강사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저널리즘 뉴미디어 석사

숭실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서울신학대학교 사회복지학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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